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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에 대한 단상(斷想)

 

때로 너무나 잘 쓴―논리적으로나 내용면에서나 문장력에서도 거의 흠 잡을 데라곤 없는― 글에 가슴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중있는 누군가들이 그 글을 칭송해마지 않는다고 해도, 나 스스로도 그 멋진 글에 아무리 감탄을 했다 한 들, 글에 촉촉함이 없거나 그 물기가 나를 적시지 않음에 나는 우울해진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문자 그대로 냉철한 ‘비평’과 같은 글에서 가슴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일까? 하지만 분명, 비판이고 논평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느끼게 만드는 글을 쓰는 이도 있다. 굳이 말 안 해도 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슴’이라는 것은 주관이나 감정적인 견해의 표출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글을 읽거나 좋아하는 일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나는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심지어 냉정한 비판에서도, 글쓴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좋아한다. 그 마음이 나와 통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령 나와 반대쪽의 생각일지라도 일단은 인정하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글을 쓰는 이들은 서릿발 같은 단정을 내리거나 비판을 하면서도 상당한 심리적 유보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대개 그들의 유보 속에는 그러한 유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공간이 있다. 내가 존경하고 인정하는 글쟁이나 평론가들은 그러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며―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인간적으로도 그들은 '된 사람'이리라고 감히 단언한다.


(2009년 8월 27일, 버들아씨...)


붙임)
여름 동안 조금이나마 글 정리를 하리라 마음먹었는데 결국 달포가 넘도록 아무 것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한동안 업데이트도, 성실한 이웃 노릇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잠시 들른 김에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by Euridice | 2009/08/27 15:44 | 생각쟁이의 독백 | 트랙백 | 덧글(3)

배설을 위한 단상(斷想)>


중학교 때 도덕(윤리)책인가 국어책이던가에 “된 사람, 든 사람, 난 사람”이라는 글이 있었다. 그 글을 공부한 우리 세대가 아니더라도 제목만 보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군부독재 시절의 교과서긴 했지만, 당시의 교과서에는 살아가면서 기억나는, 쓸 만한 파편들이 제법 있었다.

. . . . . .

우리의 도덕책에 철저하게 비판일색으로 소개되었던, 그래서 마치 공산당, 그것도 이북괴뢰정권―내 표현이 아니라 당시의 일반적인 표현이다― 배후의 원흉이 되어버렸던 마르크스이론 교육은 사상이라는 것이 전혀 영글지 못했던 어린아이에게 잘못된 인식의 세뇌를 시키기에 충분했다. 고교시절부터 사상서와 철학서적들을 나름 [학생들의 평균보다는 많이] 접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우리가 배웠던 북한주민들과 다를 바 없는 잘못된 세뇌교육의 착실한 결과물이 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세뇌됨의 측면에서 북한주민이나 [전국 방방곡곡, 외지까지 장악하고 있는 조·중·동 언론의 논리에 세뇌되어 버린] 남한주민이나 근본적으로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물론 경제적인 우월함으로 인해, 다방면으로 경제력이 허용해온 만큼의 보다 나은 계몽(啓蒙)은 있었고 그 덕분에 북한보다 깨인 사람, 시쳇말로 말 많은 반동이 더 많을 뿐이다.

‘말 많은 반동’에 속할 정도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조·중·동적인 시각을 주류로 보는 한, 나 역시 주류의 눈에선 반동에 속할 것이다. 요즘은 이러쿵저러쿵 말 많으면 무조건 좌빨이라고 하더라. 얼마 전 시사평론가 김 용민 씨가 피가 펄펄 끓어야할 [요즘] 20대의 철저한 현실타협적인 태도를 비난하는 논조의 글을 써서 당사자인 20대를 막론한 상당한 사람들로부터 심지 날카로운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나 역시 주위에서 보는 현실을 감안하여 내심 그의 논조에 부분적으로 공감했고 부분적으로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정작 20대 초반인 우리 딸아이는 김 용민 씨의 글을 읽더니 나 보다 더 공감했다. 흥분을 했든 공감을 했든 김 용민 씨의 글에 자발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20대는 적어도 그가 우려한 20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흥분하거나 반성하는 그들은 나름대로―그들의 방식으로― 피 끓는 젊은이들인 것이다.

학계도 크게 다를 것 없긴 하지만 학계를 떠나서 보는 현실은 생각보다 더 한심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번갈아가며 봤다는 집안에서 자란, 내가 아는 대학원생 한 사람은 ‘제목만으로도 비판적 사상서인 듯싶은 책은 만져 보지도 않았다고’ 하면서(무슨 자랑도 아니고),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빨갱이신문이 아니냐고 한다(헉!). 인문계 학생인 그가 대체 어떤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고 통과했는지 궁금하다. 또 한 예로, 비록 미술을 전공했지만—그래서 인문사회학적인 공부들과는 소원했더라도— 대학까지 나왔으며, 사업을 하는 남편을 둔 한 친구를 얼마 전에 만났는데, 아무리 인터넷과 소원하고 산다지만, 그 친구는 조·중·동이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정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야기 중에 자연스레 조·중·동이라는 표현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는데, 그 아이가 조중동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일순 나는 경악했다. 내 의식은 그 순간 이미 기절했다. 친구 왈, 지금까지 20년 넘게 조선일보를 봤는데 이번에 중앙일보로 바꿔볼까 하는 중이란다. 이쯤 되면 그 친구와 나는 시사적인 면에서 단 한 문장의 공통분모도 없으리라 생각해도 된다. 결국 오랜 죽마고우와 적대적인 남이 되지 않으려면 만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그야말로 ‘밥 먹고 사는’ 이야기뿐이다. 밥 먹고 사는 이야기조차도 극히 피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야기를 하려면 상대가 평생 조·중·동 읽어온 사람인지 아닌지 부터 살펴야 할 정도다. 시쳇말로 말이 씨가 안 먹힌다. 6-70년대의 북한주민 앞에서 김일성 주석의 욕을 하는 꼴이다.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러니 왜 기득권이 자라나는 학생들의 자유롭고 광범위한 독서를 훼방 놓아야 하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생각 없이, 시험성적이나 토익점수 등, 내미는 숫자만 높은 무뇌아들만 생산하면 그들로서는 ‘딱’인 것이다. 그래도 원래 똑똑하게 태어난 놈들은 성적이 좋든, 적당한 성적만 받든 간에, [부모의 성향과 관계없이, 기성세대의 훼방에도 꿋꿋하게] 스스로 찾아 읽고 공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다수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이 무섭다. 문제는, 계속 배우고 연구하고 있는, 딴엔 지식인이라고 깝죽대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론 의견이 다르고 사상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조·중·동의 수십 년 독자들이고,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조·중·동이 펼친 논지의 답습이며, 하다못해 가십거리까지(!) 조·중·동 논지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할 땐 기가 찰뿐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도 조·중·동 신문을 봤다. 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번갈아 봤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는 정권에 빌붙기는 했어도 이 정도까지 발악하는 수준은 아니었지 싶은데, 어쩌면 당시에는 그들과 대적하는 반대 언로가 지금보다는 대단치 않아서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름 비판적인 논자들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미성숙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의 전횡 탓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어린] 나는 어김없이, 경향이나 서울신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특히 경향신문은 사상적 비주류로 간주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고마우신 우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길이길이 이 역사에 빛나오리다...” 라는 개사된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했던 시절이었고, 유신헌법 개헌 때는 학교 선생님께서 그 어린 초딩들에게 ‘집에 가서 부모님들께 꼬옥(!) 찬성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라’는 교육을 시켰던 기억이 난다. 열 살의 나는 정말 유신이 아니면 우리나라가 망하거나 당장이라도 빨갱이가 쳐내려 와 적화통일이라도 될 줄 알았다. -.-

학교에서 착실하게 세뇌를 받고 있던 딸을 기르시던 아버지는 평생 야당 편이셨다. 아버지의 사무실에는 조·중·동을 위시하여 한국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지방지 등, 당시 강릉에서 배급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일간지가 다 있었다. 순수한 사업가일 뿐이셔서 당원활동을 하신 적도 없고, 크게 정치에 민감한 사업을 하신 것도 아니라 정치와는 상관없이 사신 내 아버지의 논리는“우리나라처럼 여당이 비정상적으로 막강한 나라의 국민일수록 야당을 지지해줘야 한다는 것, 한 목소리가 세상을 장악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었다. 대다수 강원도민이 박 정권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당시에, 아버지는 유신헌법에 반대투표를 던졌고 유신 직전의 대선 때는 김대중 씨에게 표를 줬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 앞에서 당신의 정치견해나 성향을 이야기하신 적이 없었지만,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대충은 알 수 있었다. 김대중 씨가 ‘인격적으로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며, 사상적으로 얼마나 불온한가에 대해서만’(우리시대의 황색언론이 어땠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듣고 읽었던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그런 아버지의 투표성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도 이야기했지만, 그 분은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의 생일선물로 헤르만 헷세 전집을 사주셨던 대단한 팔불출이시다. 내 사상―사상이라고 말할 것도 없지만―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건, 조금 심도 있는 문학을 읽기 시작했던 그 무렵부터였고, 점차 문학을 벗어나 사상서나 철학을 읽기 시작하면서 고등학교 무렵에 이르면 딴엔 거의 [우스꽝스런] 세계주의자가 되었다. (시작과는 이미 딴 소리 중인데, 또 다른 딴소리로 가려하니, 그만하고!)

후일 아버지께 들은 여담인데, 박 정권의 독재가 극에 달했을 무렵, 유세차 강원도에 내려 온 야당총재 일행에게 선뜻 차를 빌려주는 사람이 없었단다. 당시 강원도의 험한 지세를 뚫고 유세를 다니기엔 그 분들이 타고 온 승용차로는 상당히 무리가 있어 지역주민들의 지프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강원도에는 지방의 험한 지세 탓에 대개 지프 자가용이 많았다. 우리 집도 산길, 시골길까지 자유롭게 누빌 수 있던 지프를 소유했다. 70년대 중반만 해도 강릉 같은 소도시에서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의 가정환경 조사에서도 자가용을 소유한 집은 우리 집을 포함해 전교에서 단 세 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물론 크지 않은 학교였던 탓도 있겠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아버지에게도 부탁이 들어왔고 아버지께선 서슴지 않고 당신의 지프를 야당총재 일행에게 내주셨다(그 사람들이야 기억도 못하겠지만). 변절을 했든 말든, 지금이야 망령 같은 헛소리를 하든 말든, 당시의 야당과 제도권 민주주의는 어쨌거나 그 사람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당신의 소신을 굽힌 적이 없었고, 사업도 당신의 옹고집 때문에 말아먹었으며, 그런 면에서 어머니는 평생 마음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어찌됐든, ‘소신’이 삶을 망쳤든 말든, 한창 자라던 사춘기에 딴에는 지독한 좌절을 경험했든, 그놈의 ‘소신’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를 미워할 수가 없다. 아버지의 또 다른 소신은 [내가 종종 이야기했듯] 가장의 ‘철저한’ 책임감이었기에. 

암튼 그래서인지 70대 중반을 넘기신 아버지의 참정권 행사는, 대선이든 국회의원 선거든, 지방선거든 지금까지 당선 유효투표가 된 적이 다섯 손가락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중년까지는 온순한 성향이 주류이던 강원도민이셨고 그 이후론 경상도에 거주하셨으니 야(野)성향을 지닌 아버지의 표가 당선자를 지지하게 되기란 힘드셨을 거다. 어떻게든 불편부당을 지향하고자 하는 내 성향은 그렇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버지도 나도 보수주의자의 영역에 속해 있다. 사실 그들이 [감동스럽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엔간히만 정치를 성실하게 했다면 아마 지금의 여당 지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와는 달리 진보적인 동생부부는 한때 전교조에 속했고, 순수하게 교육개선만을 지향하여 전교조를 나온 이후론 환경연합 운동을 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정치성향으로는 진보신당 지지를 천명한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여태껏, 이야기는 서로 통했으되, 나와는 조금 다른 정치색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수의 건전한 우익은 침묵하고 ‘우익을 가장하여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부도덕한 세력’이 내가 30년 전에 보았던 그 작태를 다시 보여주고 있는 바람에 정치적 무관심을 유지하고 있던 내 마음이 본의 아닌 진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속은 연일 부글부글 끓어도, ‘대화’를 배우지 못한 세대―엄격히 말하면 나도 포함된다―의 많은 지인들과 반목하지 않기 위해 나는 여전히 침묵하는 다수에 속한다. 여기 개인 블로그에서조차 가급적 정치, 사회적 이슈를 들먹이지 않는다. 사실 그 분야는 내 영역이 아니다. 수년전 모 지방지의 독자위원으로 일 년 정도 시사적인 칼럼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정말이지 시사평론 쪽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그 분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내 주면 되는 일이고, 나는 다만 [침묵이 부정과 불의를 조장하는데 일조한다는 비판에 반성하는지라] 최소한의 의무, 이를 테면 참정권 행사나, 여론조사설문참여, 이슈에 대한 서명운동 참가 등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에만은 의무를 다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이따금 걸려오는 여론조사전화 같은 것에도 성심껏 내 견해를 밝힌다. 아끼는 동생이 근무하는 여론조사기관에서도 몇 번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걸려오는 전화에는 의식적으로 친절하게 답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어쨌거나 비겁한 나는 소신을 큰소리로 천명하거나 믿는 바대로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다. 소심한 겁쟁이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이런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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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개인사와 사적인 사념/상념으로 채워지는 내 블로그는 독자층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RSS에 등록할 필요가 없다. 무작위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다보면 사고(思考)에 있어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함부로 이야기할 수도 없고 내면을 여과 없이 뒤집기도 불편해진다. RSS 회피는 물론, 검색과 스크랩도 피하고 있는데도 언젠가 타인의 블로그에서 내 글과 똑같은 문장―한두 문장이 아닌 단락 전체―을 발견하고 기겁한 적이 있다. 일반적인 이슈에 관한 것도 아닌 단순하게 내적인 상념을 풀어낸 문장들이 적당히 쪼개져서 ‘인용이 아닌 그 블로그 주인의 내면적인 성찰로’ 올라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 허탈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산다지만,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그 문장들은 오롯이 내가 써서 인터넷 카페에 올렸던 글이었다. 알다시피 나 같은 주책도 아무나 부리진 않는다. 만고 쓸 데도 없는 것일망정, 개인적인 감정을 도둑맞은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예전에 도둑맞은 일기와 관련한 이야기인 Thief of Heart 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그건 다른 경우다. 그 도둑은 그 여자의 마음을 훔쳤을 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전용하진 않았으니까. 그 영화에서처럼 매력적인 도둑이라면 눈 감아 주겠다만(ㅋ).

포스팅을 하면서 검색금지를 사용하는데도 검색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일전에 만난 한 동생은 차라리 누구나 볼 수 있는 RSS에 등록하면 누가 봐도 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남의 것을 함부로 전용하지 못한다고 귀띔해 주었지만, 다들 함께 읽을 만한 내용의 글이어야 RSS에 풀어 놓든가 하지(>.<). 내가 무슨 명사나 인기인도 아니고, 친구가 아니라면 내 잡사(雜事)나 생각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일부러 사서하는 부끄러운 짓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버겁다. 쓰고 있는 저널이 온전히 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노출심리 내지 소외불안심리 때문에 풀어 놓는 것에 불과하기에, 이해할만한 사람이 아니면 읽어주지 않는 것이 더 감사하다. J도 그렇다고 했듯, 내 블로그에 꾸준히 들락거리는 몇 명의 사람들은 누군지 이미 내가 안다. 그들과는 온라인상으로나마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름으로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온 사람들이라 다소 팔푼이 짓을 하거나 조금 적나라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한대도 덜 부끄럽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들이야말로 내겐 다른 수천수만의 독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속 깊고 소중한 친구이자 독자들이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호흡이 긴, 게다가 지적으로나 일상사적으로나 별반 도움이 안 되는 내 잡담의 청자가 되는 일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참고 읽어주는 그들이야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 . . . . .

보시다시피 “된 사람, 든 사람, 난 사람”에 대한 새슬을 풀려고 시작한 이야기가 이렇게 완전히 딴 길로 새어버렸다. 된 사람, 든 사람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지만 난 사람은 운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난 사람’은 내 몫이 아니다. ‘든 사람’은 책을 읽고 교양을 쌓는 노력만 하면 될 수 있지만 ‘된 사람’은 피나는 노력으로도 쉽지 않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도무지 속까지 된 사람일 자신이 없다. 이 나이에도 공상에 빠지고 그 공상이 현실화 될 수도 있다는 망상까지 종종 하는 나로서도, 된 사람이 되는 일은 내게 있어서 불가능의 영역임을 잘 알고 있다. 겨우 한다는 일이 된 사람의 허울이라도 그려서 뒤집어 써보자고 애썼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요즘처럼 심정적으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면 위선으로나마 된 사람이고자 했던 자신이 철저한 실패자임을 깨닫는다.


(2009년 7월 18일, 버들아씨...)

by Euridice | 2009/07/18 20:56 | 생각쟁이의 독백 | 트랙백 | 덧글(11)

생각쟁이의 퍼즐


<생각쟁이의 퍼즐(2001/10/13)>


된다. / 안 된다.

가야한다. / 가지 말아야 한다.

해도 괜찮다. / 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했다. / 아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바보 같은... / 어차피 인간은 바보같이 산다.

그때 그랬더라면... / 그랬더라도 큰 차이는 없었을 거다.

우스운 짓이야. / 원래 인생은 코미디였어, 비극적 코미디.

그들이 웃을 거야(비웃음). / 그게 그리도 무서워?
(그런 거 저런 거 다 따지면서 어떻게 살아?)

나쁜 사람... / 나쁜 사람의 기준은 뭔가?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물적, 심적 피해를 주는 사람?)

과연 나는 얼마나 필요한 인간인가? / 결론적으로, 절대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인간이란 없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절실한, 또 한 사람 한 사람은 있다?)

절대적인 것이 없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간.

죽고 싶다. / 죽어 영혼이 되면 산 사람이 부러워진대.
(누가 죽어 봤니? 네가 죽어도 아무도 상관 안 해, 너만 억울하지.)

살고 싶은 마음과, 살아야만 하는 일 중에 무엇이 먼저인가?

왜 사느냐고 묻는 말에 그냥 웃는다는 건, 모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는 자신도 모르니까, 대답할 말이 없어서라고. (어쩌면 할 말은 있지만 말로 하기 어려웠던지, 아니면 그저 어색해서였을 수도 있다.)

딸애는 그랬다, 예전의 내가 [엄마가 무서워, 혹은 엄마와 반복하기 싫어서, 그것도 아니면 엄마 맘을 아프게 하기 싫어서] 마음속으로만 볼멘소리로 외쳐댔던 말을 그 애는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말했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이 허접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께 하나도 고맙지 않다고, 내게 삶이라는 짐을 지게 한 엄마가 밉다고,’ 그렇게 나는 속으로만 외쳤다. 내가 입 밖에 내어 그런 소릴 했다면 어머니께선 상처 받으셨을까? 어느 면에선 절망하셨을까? 어쨌거나 나는 아닌 척, 아무 생각도 없는 척, 그저 착한 딸 인양, 엄마의 보람이 되고 엄마 삶의 희망으로 살았다. 어른이 되고 나선 그 보람조차 마무리해 드리지 못했던 애물단지였지만. 그래서 그 때까지의 의미도 잃었지만.

딸애는 나와는 달랐다. 그 애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것도 엄마를 쳐다보면서 아주 당당하게! “엄마는 왜 결혼하셨어요? 안 하셨든지, 다른 사람과 하셨더라면  엄마도 편했을 테고, 나도 안 태어났을 텐데! 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싫어요. 사람으로, 아니 숨 쉬는 생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피곤해. 엄마도 잘 아시잖아요? 세상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게다가 이 따위 세상이란 것이 뭐 별로 살아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뭐니뭐니해도 안 태어나는 게 제일 행복한 일이예요.”

그러면서 그 아인 덧붙였다. “하지만, 별로 달갑진 않아도 이왕 받은 삶, 설령 힘들다 해도 내 손으로 포기하진 않을 거예요. 싫든 좋든 삶이란 것이 내 손에 들어 온 이상,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요. 그리고요, 어차피 살아야 하는 거, 난 행복하게 살 거예요. 엄마도 아시다시피, 난 행운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그리 된다니까! 으음... 하하... 나는 싫다는데도 세상이 날 필요하다는데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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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다지 어설플까? 내가 선 이자리가...
 

(2001년 10월 13일, 유리디체...)


위와 같이 말했던 당시의 딸아이는 열네 살이었다. 그리고 그 아인 지금도 저런 태도로 살고 있다.

 

by Euridice | 2009/07/16 21:02 | 생각쟁이의 독백 | 트랙백 | 덧글(4)

한눈팔기


<한눈팔기: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스폿>


최근에 몇 군데 새로운 사이트에 가입했다. 트위터(twitter)와 페이스북(facebook), 그리고 블로거돗컴(blogger.com, 즉 blogspot.com)이 바로 그 곳들이다. 어떻게 보면 유행 싫어하는 내가 이번엔 변명의 여지없이 유행에 휩쓸려 버린 듯한데, 뭐... 나라고 언제나 유행에 예외일 수는 없잖은가. (누굴 좋아하다가도 남들이 그를 다 좋아하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든지,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옷이나 물건이나 스타일은 어떻게든 피하려는 어긋장을 평소엔 좀 부리는 편이다.) 블로그스폿으로 말하자면 유행 운운할 것까진 아니고, 뒤늦게 ‘딴 맘’(?) 먹은 정도로 보면 되겠다.

소문은 이미 들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가입하게 된 것은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때문(덕분?)이었다. 8년째 대영박물관의 뉴스레터를 e메일로 받아보고 있는데, 얼마 전에 온 소식에서 대영박물관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계정을 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근히 그 쪽으로 접속해주길 바라는 듯한 뉘앙스까지 느낀 [하릴없는 눈치만 빠른] 나는 박물관 메일을 통해 그 두 사이트에 들어가 보곤 아주 잠깐의 생각만 하고나서 그냥~ 가입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순진하고 말 잘 듣는 독자다.^^)

우스운 것이 바로 그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딸아이와 트위터 이야기를 하면서, “한두 마디만 나불거리는 트위터질은 ‘아무 생각 없는’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생각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거 안 한다며, 번개 튀는 이 세상에 씨알도 안 먹힐 소리로 곰팡내를 냈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막상 가입하고 보니까,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만들어진 본래의 취지야 어떤 것이든 간에, 내겐 각기 나름의 쓸모가 있어 보인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지금] 표리부동의 진수를 보이고 있는 거다.

한두 문장이 한계인 트위터는 한 마디씩 불쑥 혼잣말 내뱉기에 ‘딱’이었다―나처럼 문장호흡이 긴 사람은 까딱하면 한 문장도 못 올릴 수 있을 정도―. 블로그 포스트처럼 생각할 필요도,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이, 마치 호흡하듯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한두 문장으로 포스팅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지 않고도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마치 문자 메시지 보내듯 폰으로 업로딩이 가능하다는 것. 물론 폰 블로깅이라는 것도 있지만, 나 같이 말 많은 사람은 블로그 포스팅에 폰을 사용하지는 못한다. 누가 뭐래든, 길든 짧든, 블로그 포스트라는 것은 내겐 적어도 ‘글’이니 말이다. ‘글’이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며, 말 역시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말을 함부로 하는 것과 글을 함부로 쓰는 것 사이엔 천양지차가 있다. 나는 가끔 막말을 하지만, 글까지 그렇게 쓰지는 않으려고 애쓴다. (이는 물론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니 태클 거실 필요는 없겠다. 나는 내 주관에 충실할 뿐이다.)

암튼 트위터는 나로선 글이 아닌 단발마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를 테면, “젠장, 요즘엔 당최 되는 일이 없어!”라는 불평이라든지, “아~ 머리 아파!”라는 외마디를 불쑥 내뱉는 순간이 있을 때 그걸 자판으로 친다는 거지. 쓸데없는 호흡까지 살릴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그 순간 뭘 하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슬쩍 엿볼 수 있다. 내 순간적인 궁시렁의 보관 장소라고나 할까.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내 투덜거림인 만큼 나는] 볼만하다. 게다가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나를 따라다니는 불특정 대상에게 광고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나를 따라 다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모두 스패머들이긴 하다만.ㅋㅋ 내가 그들에게 관심 없으니 그들이 따라 다니든 말든 상관없고, 굳이 신경 쓰이면 Blocking 해버리면 된다.

페이스북은 트고 보니, 관심 있는 사람이나 장소, 요컨대 그들의 사이트에 찾아가지 않고도 내 공간에서 그들의 업데이트 상황을 알아볼 수 있으며,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블로그의 이웃사이나 링크 혹은 인터넷 동호회와 [극히 일부] 비슷한 점도 있지만, 아무리 온라인 모임이라고 해도 다른 ‘인간’들과 부대껴야 하는 동호회와는 달리, 페이스북 링크에는 심적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것이 장점인 듯하다. (관점에 따라선 장점이 곧 약점이자 오점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무지 외로움을 타기 때문에 세상과 절연할 순 없으면서도 남과 허물없이 어울리지를 못하는―때론 원치 않는― 나 같은 이율배반논자의 ‘혼자 놀기’로선 썩 괜찮은 장소다. 관심 있는 사이트의 업데이트 상황이 자동으로 내 홈에 뜨기 때문에 그 때 선별해 봐도 된다는 편리함이 있다. 앞으론 간혹 사적인 용건으로 사용하게 될 수도 있어 보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모두, 친한 친구들끼리 사용하는데 따라선 그들 나름의 편리함도 누릴 수 있을 듯싶다. 나로선 아직 그런 친구가 한 명도 없지만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오프의 내 친구들은 나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친구가 거의 없다. 오프의 취미조차 다르다. 그래서 자주 만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물론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게다가 그 아이들은 인터넷 접속도 잘 안하고 어쩌다 메일을 보내도 몇 날 며칠씩 열어보지도 않기 때문에, 용건 있으면 그냥 전화로 하는 게 낫다.^^ 만약 페이스북 덕분에 내가 찾고 싶은 옛 친구를 어느 날엔가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겠나. (그 친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이트의 친구 찾기로는 찾을 수 없다.)

어쨌거나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허구헌날 방콕에서 혼자 뒹굴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편한 세상이긴 하다만, 이러다가 인간이 점점 기계[부품]화되고 파편화되어 휴머니티까지도 분해되어 버리는 것이나 아닐지 모르겠다. 이미 어느 부분은 상당히 그렇지 않은가.


(2009년 7월 5일, 버들아씨...)


사족)
이번 여름 방학 동안에 반드시 읽어야할 책 목록을 거르고 걸러 뽑았는데, 무려 28권이었다(어쩌면 몇 권 더 생기거나 변동이 있을 수는 있다). 그게 얄팍하고 재미있는 소설들이면 무엇이 문제이며 좀~ 좋겠냐만, 수십 년 만에 다시 읽어야 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비롯해서 ‘분량도 만만찮고, 노쇠한 요즘 머리로는 골치 아프기 십상인’ 책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데다, 그 가운데 영어원서가 13권이다. 분명 자신의 능력―지력(知力), 안력(眼力), 체력(體力) 등―은 고려도 않은 채 욕심만 배 밖에 내었다. [도박]좌판 벌여놓고―혹은 계 모아놓고― 줄행랑치는 사기꾼 꼴 보이기 ‘딱’이다. 그나마 그런 사기꾼은 범죄로 횡재(?)라도 하련만, 내 허풍선은 자타에게 내보이는 [팔]푼수 짓 밖에 안 될 테니, ‘밑져야 본전’은커녕 ‘최고로 잘해야 기껏 본전’을 찾을 일이다. 그런데 당연히 미달성 푼수 짓으로 끝날 일을 왜 광고하냐고? 요로코롬 광고라도 해야 내 입으로 한 말에 은근히 부담을 느껴 요즘 같은 딴 짓을 덜할 게 아닌감. 이러다간 목표달성도가 아예 바닥을 뒹굴겠기에 말이다.

사족2)
새로 가입한 사이트(twitter, facebook, blogger.com) 모두 한국어가 지원되고 있지만, 세 군데 모두 기본적으로 외국친구를 염두에 두고 만든 홈 계정이기 때문에 고유명사나 특수명사를 제외하곤 전적으로 영어로만 운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쥔장도 예전부터 쓰던 영국식 이름을 쓴다.^^;;

by Euridice | 2009/07/05 16:41 | 삶의 나날들 | 트랙백 | 덧글(8)

옴니버스 정서(情緖)


이번 여름, 인터넷 폴더에 처박아 두었던 과거의 일기들을 꺼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냥 두면 제 자신도 다시 읽지 못한 채 인터넷 서버들의 불가피한 자폭에 의해 어느 샌가 또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요. 그래서 잃어버린 기록들이 제법 되는 탓에 주섬주섬 어설픈 공개 파일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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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情緖 (2002/04/22)>


음악도 아닌 것이 음악입네, 하면서 뻔뻔하게 늘 똑같은 음 두어 마디만으로 반복적으로 설치며 잠을 깨우는 모바일의 알람. 어쩌지 못해서 맞춰놓기는 합니다만 그 놈의 들쑤심에 찔려서 일어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억지로 깨우는 알람소리에 일어나는 어느 날들엔, 깨고서도 꾸벅꾸벅 졸기 마련이지요. 스스로 설정해 놓고도 거기에 순순히 따르기 싫은 억하심정 탓인지 제정신은 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미리 자리를 박차곤 합니다. 알람은 그저 언제나 데드라인처럼, 모르페우스(Morpheus)에게 다녀오는 제 귀가를 체크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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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제게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꾸었단다.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알지도 못하는 곳을 헤매면서, 단지 가야한다는 당위의식만을 느끼며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단다.” 얼마 전부터 나는 그 분이 꾸던 그 꿈들이 내 것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불(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층수를 잘못 눌러 오르락내리락 반복하거나(분명히 승강기에서 빨리 내려야 할 이유가 있어 애타고 초조한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내가 내려야할 곳에서 승강기 문을 활짝 열어 제켰는데, 그곳이 누군가의 장례식 장이었다든지, 온통 하얀 상복과 군데군데 검은 가운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서 제자리를 몰라 방향감각을 잃고 서성이는 나를 보고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는 일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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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데워 놓고도 잊어버리는 버릇 같은 건망증 덕분에, 몇 시간 만에 전자렌지에서 나온 다 식은 커피는(하룻밤 만에 나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군요. 데워 놓은 사실을 잊고 다른 잔에 새로 타기도 하니까요), 다시 또 데워 보지만, 이제 쓴맛만이 남아 설탕과 크림을 듬뿍 치지 않으면 마시기가 힘들어집니다. 맛이 삭아버린 커피 따윈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 뽑으면 될 것을, 늘 그렇듯 독한 한약 마셔대듯 인상을 쓰며 목구멍 너머로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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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며칠 동안 자신이 빠져 헤매고 있던 우울의 계곡을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산등성이로 올라가는가 싶다가도 잠시 발을 헛디뎌 다시 떨어지곤 하는 그 계곡엔, 이젠 그 여자가 주저앉았던 자리가 깊게 패어 있습니다. 보기 흉한 엉덩방아 자국이지요. 늘 같은 자리에 떨어지곤 하기 때문이랍니다. 때론 그 자리가 아닐지라도 가까운 그 근처에.

다시 내려올 것이 빤한 일이니 어리석은 반복을 이제 그만 하라는 계곡 님프의 검은 유혹은 나날이 집요해지고, ‘아직은...’ 하는 여한의 책임을 요구하는 부담의 위협과, ‘그래도...’ 하는 실 같은 미련에, 여자는 충격에 멍든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세워 다시 올라가 보려고 안간힘을 쓰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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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가볍고 밝은 음성은 우울한 이들로 하여금 힘없는 미소라도 지을 수 있게 만들곤 하지만, 옆구리를 간질이는 볼프강의 얼굴에서조차 때론 애써 웃는 힘겨움에 그늘이 지는 것을 봅니다. 그가 만약 서른다섯 살 이후에도 살아 있었더라면, 그래서 베토벤처럼 줄기차게(?) 창작활동을 했더라면, 그의 후기 작품은 무겁고 음울하고 비장했을지도 모르죠. 그 누군가처럼 복잡했을지도 모르구요. 이른 죽음이... 어쩌면 그의 순수를 지켰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상하게도 그 여자의 귀에는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이야기했을지도 모르는 모차르트의 남은 이야기들, 작곡되지도 않은 음파들이 뒤범벅이 되어 웅얼웅얼 들리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정신병인가?) 아무도 오래 전에 죽은―그리고 살아 있다고 해도― 그의 빈 가슴을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만, 이제껏 알아온 다소 모자라는(?) ‘순수의 방황’과, ‘갈등의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서는 성숙한 사색과 혼란을 앳된 그에게서 발견하곤 합니다.

웃자고, 손잡고 돌아보자고, 그는 쿡쿡거리며 그 여자를 꼬드기곤 합니다. 그 여자가 감히 흉내 내지도 못할 깨끗하고 발랄한 서정(敍情).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처럼, 더럽고 추한 분진에 가려져 있었어도 그 뒤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었던 그녀처럼, 그는 마치 어둡고 질척한 갯벌 속에서도 은빛 광채를 잃지 않고 있던 진주 같은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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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민 축축한 손에선 흥건히 배인 땀 말고도 뭔가가 더 있었습니다. 젖은 손...... 누군가의 눅눅한 손에 닿는 걸 무지 싫어했으면서도 그 여자는 그의 손을 성큼 잡았지요. 그리고 이젠 온몸으로 엄습해오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습기가 싫어 서글퍼 하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힘으로...

맞잡은 손에 힘이 풀리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인 것만 같아... 생명과 의식과, 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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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어도 늘 어둡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드는 어수선함 뒤에도 숨어 흐느끼는 오열이 있어, 때론 ‘안팎으로 같은’ 밝은 햇살, 감정을 기만하지 않는 솔직하고 마땅한 정서를 느끼고 싶었고, 그것을 위하여 모차르트의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가장 단순한 작품들에서 전해져 오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식하고 싶지 않은 모호함에 몸서리치고 있습니다. 투명하지만 결국은 그림자일 뿐인 어둠이, 나도 모르는 새 열렸던 마음에, 들어섬을 거부하는 빗장을 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모차르트 때문에 슬펐습니다. 아니, 더 큰 슬픔을 요구하는 그의 음악이 미웠습니다.


(2002년 4월 22일 새벽, 유리디체...)


 

by Euridice | 2009/07/01 22:24 | 그 여자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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